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요즘 회자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건물주와 세입자는 상치관계라는 점을 읽게 한다. 원래 젠트리피케이션은 귀족 아래의 지주 계급, 즉 땅 부자를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말이다. 교양 있고 예의 바른 남성을 의미하는 젠틀맨 역시 젠트리에서 나온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이 개발되면서 중상류층이 거주하는 고급주거지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현상은 때로는 희비가 엇갈린다. 도시는 새 단장을 하지만 세입자는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외곽으로 밀려나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한동안 국내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재개발에 따른 도심 르네상스나 도심 회춘에 초점을 맞춘 논의들이 많았다. 용산과 광화문 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이 대표적이다.

허나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은 세입자의 한숨을 대변하는 ‘절망의 언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주로 서촌이나 북촌, 가로수길 같은 핫플레이스에서 상권이 급부상하면서 파생된 고임대료 후폭풍 때문이다. 당초 교통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은 골목길의 이들 지역에선 임대료가 저렴해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가게들에 관광객과 쇼핑객들이 몰려들었다.

그 사이 땅값이 폭등하고 임대료도 덩달아 뛰었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는 밀려나고 빈자리는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채우고 있다. 세입자들은 자신들이 애써 가꿔놓은 골목길에서 함께 번영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쫓겨나니 허탈감 속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은 부자(건물주 혹은 집주인)에게는 행복이 될 수 있지만 빈자(세입자)에게는 오히려 불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도심 부흥의 역설이다. 하지만 개성과 볼거리가 사라지는 평범한 골목길에 과연 언제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사람의 발걸음이 끊어지면 상권은 금세 시들어진다. 그리고 한번 죽으면 다시 되살리기 어려운 게 상권의 특징이다.

상가 투자를 한다는 것은 건물주가 세입자와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이다. 건물주는 자금을 대고, 세입자는 기술을 투자하는 공동 비즈니스다. 상가는 아파트와는 달리 한번 사면 팔기가 쉽지 않은 장기투자 상품이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공생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래서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은 상가투자 때 귀담아둬야 할 명언이다. 최근 한 먹자골목에서 본 ‘을(세입자)이 죽으면 갑(건물주)도 죽는다’는 플래카드를 봤는데, 세입자의 억지 논리는 아닌 것 같다.

다행히 요즘 곳곳에서 건물주와 세입자(상인)의 공생을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서로 힘을 합쳐 상권을 살리려는 것이다. 건물주와 세입자 공동으로 상가발전위원회를 구성, 축제를 열거나 심지어 건물주가 야간에 방범 도우미까지 나선다. 결국 세입자와 건물주가 뭉칠 때 장기적으로 공동 이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 되어야 임대료도 올라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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