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원 기자

크리스마스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즐거운 성탄절 뒤에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고통이 수반될 테지만 일단은 괜한 설렘에 마음이 들뜨는 요즈음이다.

연말을 맞이하자 소개팅을 제안하거나 주선을 부탁하는 지인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모두 연인과 함께 낭만적인 겨울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됐을 터. 근래에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에 갔을 때 항시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남녀들을 마주치는 듯하다.

소개팅에서 서로 간 대략적인 신상 파악을 마친 뒤 반드시 나오는 멘트 중 하나가 “취미가 뭐예요?”다. 대개 질문에 대한 답변은 크게 상이하지 않다. 음악감상, 독서, 요리, 운동 등이 무난한 응답으로 꼽힌다. 헌데 최근에는 “글쎄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마땅히 취미랄 게 없다는 것이다.

주변에 취업준비 중인 이들 중에서도 자기소개서 취미란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20~30대 직장인 및 취준생들이 ‘취미 없음’을 푸념하는 게시글을 이따금 보게 된다.

취미 없는 사람들이 늘면서 취미를 찾아주는 심리검사까지 등장했다. 수십 문항의 질문에 차례대로 답하면 맞춤형 취미를 제안하는 서비스다. 당신은 창작형이니 프라모델 만들기를 추천한다, 뭐 이런 식이다.

최근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동시대 취미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1152명 중 무려 65.0%가 ‘취미가 없다’고 답했다. 여유가 없고 먹고살기 바쁜 데다(57.9%), 피곤해서(20.8%)라는 이유가 컸다. 직장인 7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다른 설문에서는 ‘살면서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항목’에 ‘취미·여가’가 1위로 꼽히기도 했다.

‘덕후’가 트렌드로 잡힌지 오래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과거에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취미 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됐지만 이제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더욱 자주 쓰인다.

TV를 보면 일본 만화 캐릭터, 전자기기 등을 수집하는데 열을 올리는 연예인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기자가 실제 주변에서 만나는 20~30대들 중 상당수가 취미가 없다고 말한다. 각박한 경쟁사회 속에서 소소한 즐길거리조차 갖지 못하는 청춘들. 덕후의 시대라는데 한쪽에선 취미 없음을 토로하는 청춘들이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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