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권리에서 의무가 된 도전

도전은 아름답다. 그리고 이에 따른 경험은 값지다. 누구나 수긍하는 이 명제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가슴을 추동해왔다. 인류의 문명은 수많은 도전에 이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어 발전했다.

지금의 사회에서도 도전은 하나의 미덕처럼 다뤄진다. 여러 매체에서 도전에 대한 체험담과 수기가 쏟아지고, 도전을 통해 유의미한 경험을 쌓도록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그리고 도전과 경험에 대한 담론들은 대개의 경우,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손짓한다.

도전의 가치가 어느 특정한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닌데도, 현 사회에서 그것은 유독 청춘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이제 도전은 청춘의 권리가 아닌 하나의 의무처럼 변모하고 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순수한 성취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 도전의 목적일 텐데, 현 청춘들에게 도전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가는 것 같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도전인가 

전에 우연히 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대기업의 입사 면접에서 경쟁하게 된 청년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풍자한 소극이었다. 지원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쌓아 올린 스펙과 경험들을 늘어놓으며, 면접관의 마음을 필사적으로 얻으려 했다.

그중 한 지원자가 네팔의 봉사활동 중 히말라야에 올랐던 경험담을 꺼낸다. 한데 속으로는 ‘누군가는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고 하지만, 나는 취업을 위해 히말라야를 오른다’고 곱씹었다.

내 주변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전부터 친한 지인 하나가 늘 직장 생활의 괴로움을 토로하곤 했었다. 그만둘까 말까, 그는 간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얼마 전 그는 제대로 된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사직서를 냈다.

아직은 사회에서 어린 나이에 가까웠지만, 막상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는 더없이 막막해 보였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지인은 나에게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지친 그에게 휴식과 재충전이 절실해 보였던 나는 그 말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에게 여행을 가려는 이유를 되묻자, 그에게선 여행의 경험이 재취업에 무엇보다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때 친구의 모습과 위 풍자극의 인물이 겹쳐 보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해외 배낭여행이라는 도전을 선택한 이유가 온전히 그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은 조금 씁쓸했다.

도전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들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활동은 취업과 연결되곤 한다. 봉사활동, 워킹 홀리데이, 배낭여행, 아르바이트, 각종 스터디 모임 등등. 청춘들은 경험하고 도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기성세대가 움직이는 사회는 도전의 미덕을 강조하며, 청춘들에게 끊임없이 현실에 몸을 던지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실제로 청춘들은 취직과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한다.

도전은 물론 바람직한 것이다. 청춘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해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도전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 도전을 통해 경험을 쌓고 성취의 기쁨을 맛보는 것은 본래 나를 위한 것이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도전이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다 보면, 청춘들은 지치고 힘들어도 늘 새로운 것에 부딪혀야만 한다. 때로는 그것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청년들은 취업 지원에서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기 위해, 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시달린다.

청춘에게도 실패는 아프다

취업뿐 아니라 청년창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가진 젊은 패기로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고 거침없이 전진하라고 권한다. 아울러 청춘들에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청년세대든 기성세대든 실패가 뼈아픈 건 피차일반이다. 물론 청춘들이 기성세대에 비해 대체적으로 더 열린 사고를 갖고, 새로운 분야에 탐닉하는 성향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히려 사회적 기반이 허약한 청년들에게 실패는 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엔 기본적으로 실패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여전히 깔려 있다. 덧붙여 청춘들의 좌절에 대해 제대로 된 뒷받침을 해주는 시스템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스스로 그 실패를 잘 포장하고, 그 위에 올라서야 하는 것은 결국 청춘이다.

나는 사회가 청년들의 도전을 더 사려 깊게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왕 도전을 권할 거라면 그들이 실패를 맞았을 때,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청년들은 도전하고 경험을 쌓는 데 많이 지쳐있다. 너희는 젊으니까, 열정이 있으니까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들은 청춘을 더 아프게 할지 모른다. 젊음은 싱그러울지는 몰라도 만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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